소설가 김연수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아무리 뭐라고 떠들어댄다고 한들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을 믿지 못하겠다. 치사하고 졸렬한 정부다.)
이제 마음이 좀 가라앉았으니까, 왜 이런 포스팅을 했는지 설명하지요. 위의 시를 쓴 사람은 황지우 시인입니다. 고백하자면, 제가 처음으로 시를 쓴 건 황지우 시인의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읽고 난 뒤였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는 문지 시인선 300권 축하 산문에서 쓴 일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5공화국 시절이지요. 전두환 씨가 대통령으로 있던 시절이에요. 군사정권에 대한 그 어떤 비판도 티브이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시절이에요. 오죽하면 가요 차트도 티브이에서 매기는 순위가 있고(우린 그 순위를 누구도 믿지 않았죠), 다운타운에서 매기는 순위가 따로 있었죠(들국화, 이광조, 신촌블루스, 부활, 백두산, 시나위 등등이 이 순위에 포함됐죠). 어제 SBS 8시 뉴스를 보니까 참으로 생활에 지혜가 되는 뉴스들을 틀어주던데(예컨대 숯을 그냥 먹으면 안 된다는 둥, 에베레스트 등정 일기라거나 뭐 그런 연성 뉴스들) 그 때가 꼭 그랬답니다. 그런 시절에 황지우 시인의 시를 읽었는데, 그건 얼마 뒤 박노해 시인이나 김남주 시인의 시를 읽었을 때만큼 충격적이었답니다.  특히 '연혁' 같은 시를 저는 꽤 좋아했습니다.

황지우 시인의 시는 암시적이고 모던하고 때로 서정적이기 때문에 현실참여적이기보다는 문학적이라고 여겨집니다. 저는 대학교 초년생일 때, 그가 쓴 작은 판형의 산문집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습니다. 거기에는 '시적인 것'에 대한 그의 고민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어요. 그가 말하는 '시적인 것'이란 다다이스트들이 하는 꼴라쥬와도 비슷해요. 예컨대 신문 기사를 그냥 통째로 옮겨놓아도 '시적인 것'이 되기도 하죠. 검열이 일상화된 사회에서는 신문기사나 앵커의 논평 자체에 검열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냥 단순히 옮겨놓는 것만으로도 '시적인 것'이 된다는 뜻이죠. 어제 제가 위의 시를 그냥 블로그의 게시하는 것만으로도 황지우적인 관점에서는 '시적인 것'이 됩니다. 이런 것에서 짐작하시겠지만, 황지우가 말하는 '시적인 것'이란 매우 정치적인 행위에요. 황지우 시가 단순히 문학적이지 않고, 긴장을 내포한 까닭은 이 때문이에요. 그가 문학에 대해서 말하면 말할수록 그의 행위는 정치적인 것으로 드러나는 것이죠.

황지우 시인에게 본명이 따로 있다는 건 이십 대 시절 우리에겐 널리 알려져 있었죠. 서울대 문리대의 황지우, 이인성, 이성복 이들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문청 시절에 우린 즐겼어요. 황지우라는 이름은 그가 들고 다니던 타자기의 한 활자가 고장나는 바람에 만들어진 필명이라는 소문을 우린 들었죠. 매우 낭만적인 소문이지만, 아마도 사실은 아닐 거예요. 그 시절에 황지우 시인이 어떤 일들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그의 동생인 황광우 씨가 쓴 책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를 읽으면 알 수 있어요.  그 책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던 황지우의 모습이 들어 있습니다. 군사정권 시절에 그와 그의 가족이 당한 고통은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지요. 나는 아주 나중에야 황광우 씨의 책을 읽고 나서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황지우 시인의 시를 다시 보게 됐어요. 제가 그런 고통을 당했다면 저는 절대로 '시적인 것' 따위를 말하진 않았을 거예요. 저는 미학을 버렸을 거예요. 저는 좀 생각이 짧거든요.

위의 시는 1980년대 초반에 황지우 시인이 쓴 시에요. 전두환 씨가 한반도의 남쪽을 지배하던 시절이에요. 그 때 극장에 가면 애국가를 틀어줬어요. 하절기에는 오후 여섯 시, 동절기에는 오후 다섯 시면 어김없이 거리에 애국가가 울려퍼지던 시절이었죠. 애국가가 울려퍼지면, 우린 길을 걷다가도 걸음을 멈추고 시청 쪽을 향해서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려야만 했지요. 그러니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애국가가 나오면 다 일어나서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려놓아야만 해요. 갈 곳이 없던 시절이니 연인과 은밀한 데이트를 즐기려고 들어갔다고 해도 그 애인의 손을 만지기 전에 먼저 일어나서 민족과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짐해야만 했어요. 애국가가 나오는 동안 스크린에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발전하는 모습이 비춰졌어요. 포항제철의 용광로, 서울의 화려한 빌딩, 뭐 그런 것들이죠. 산업역군들의 활약 같은 거. 마지막은 위의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을숙도의 철새들이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풍경이었어요. 1980년대 초반에는 그냥 그런 게 시적인 거예요. 지금 우리가 롯데시네마의 비상구 안내도를 그대로 문자화한다고 해도 시적인 것은 되지 못하겠지요. 하지만 그 때는 그랬어요.

그 무렵, 지금 문화부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신 유인촌 씨는 전원일기에 양촌리 둘째 아들로 나오고 있었죠. 전원일기는 초등학생이던 제가 즐겨 보던 프로그램이에요. 캐릭터가 워낙 강했던 드라마였기 때문에 장수할 수 있었어요. 얼마 전에 제가 영화를 찍었잖아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거기서 하정우 씨의 연기를 처음 보고 완전 반했는데, 그 분의 아버지인 김용건 씨는 양촌리 김 회장인 최불암의 첫째 아들로 나오죠. 최불암 씨는 농사만 지어온 사람, 첫째 김용건 씨는 그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교육도 받고 또 관직에도 나간 사람, 둘째 유인촌 씨는 형을 위해서 제대로 꿈도 펴지 못하고 집에서 묵묵히 아버지를 도우며 농사 짓는 사람, 이런 식으로 캐릭터가 설정돼 있었어요. 농촌 공동체가 해체되고 서울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던 그 무렵, 전원일기는 나름 농촌에 대한 전향적인 시각을 지녔었지요. 저는 1980년대 내내 거의 대부분의 전원일기를 다 시청했어요. 지금처럼 미니시리즈 같은 게 없었던 시절이었으니까 나름 전원일기는 인기 프로그램이었죠.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는 이 세상은 그래도 사람 사는 정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내 한 몸 희생하면 온 가족이 행복할 수도 있다고도 생각했어요. 그게 1980년대 초반의 사람들이 지닌 상식적인 정서일 거예요. 아마도 제가 황지우의 시를 읽지 않았더라면 저는 그 정도의 생각만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갔을 거예요.

여러 가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몇 가지만 얘기할께요. 정권이 바뀌고 그간 여러 사람들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대한 글을 썼지요. 동아일보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운동권 학맥'이라는 칼럼도 실렸습니다. 뭐, 제목과 같은 내용의 글이에요. 한국예술종합학교에는 운동권 출신의 교수들이 있다는 이야기에요.(이 글에 대한 반론은 며칠 뒤 같은 신문에 실린 '한예종에 대한 진실과 거짓말'입니다.)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예술가라면 1980년대에 정치 운동에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요. 뭐, 전면적으로 나서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정치적인 것이 내면화돼 있는 게 당연하죠. 그렇지 않고 무슨 예술을 해요? 1980년대에도 청와대를 칭송한 문인들이 있었어요. 그건 두고두고 그들에게 오욕이 되는 일이잖아요. 아무튼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요. 어쨌든 지금 상황은 운동권 출신이니까 문화부문광부 장관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한예종 총장 자리에서 물러나달라는 얘기네요. 지난해부터 하는 말들을 종합하면 한예종을 구조조정한 뒤에 이론 과목을 줄이고 철저하게 실기 위주로 한예종을 재편성한다는 것 같네요. 말은 아름답지만, 그 결과는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은 교수들(그들은 대부분 이론을 담당하고 있지요)을 해임하고, 한예종을 기능교육화시키는 것으로 귀결되겠군요. 이렇게 해서 이들이 물러나면 그 자리를 누가 채울까요? 그게 바로 이번 일의 핵심인 것 같네요.

황지우 시인이 살아온 삶을 생각하면, 또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살아온 삶을 비교하면, 지금의 상황은 부당하지요. 하지만 삶이라는 게 언제나 논리적으로, 정의롭게 흐르는 것은 아니니까 부당하다고 해도 모든 일이 순리대로 풀리는 건 아니지요. 대신에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건 기억해야만 하겠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는 문화부문광부에서 하는 말을 하나도 믿을 수 없습니다. 문화부문광부는 한예종 총장이기 이전에 뛰어난 한 시인을 매우 치사하고 졸렬한 방식으로 다뤘다고 생각해요.
‘예술가=기능인’이라고?
문화판 뉴라이트는 ‘대체 예술에 왜 이론이 필요하냐?’라고 묻는다. 그들이 ‘이론’을 공격하는 이유는 자기들이 ‘좌파’라고 지목한 몇몇 교수가 이론과에 소속돼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기능에나 전념하라는 것이다.
[93호] 2009년 06월 22일 (월) 11:32:13 진중권 (중앙대 겸임 교수·독어독문학과)
   
진중권 교수는 유인촌 장관을 강하게 비판했다.
“진씨는 2008학년도 카이스트 봄 학기에 미디어미학을 강의했으나, 이른바 마셜 맥루한 같은 미디어학자나 발터 벤야민 같은 철학자를 소개하면서 이를 미디어미학으로 명명을 붙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사냥에 앞장섰던 어느 매체가 이런 기사를 실었다. 진중권의 강의가 엉터리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게다. 도대체 맥루한과 벤야민이 미디어미학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따지고 드는 대목에서는 그만 실소를 머금게 된다. 참고로, 마셜 맥루한은 전공이 영문학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게다가 어렵다. 또 발터 벤야민이 오늘날 미디어미학의 토대를 놓았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

이 기사의 제목이 재미있다. ‘진중권, 독일문화 수업에서 백남준 강의?’ 한마디로, 백남준과 독일 문화가 무슨 관계가 있냐는 거다. 참고로, 백남준은 일본에서 쇤베르크를 공부한 후 독일에 건너가 슈톡하우젠 같은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다가, 그곳에서 요셉 보이스 등과 더불어 ‘플럭서스’ 운동을 일으킨다. 독일에서 일어난 이 예술운동은 곧 전 세계로 퍼져나가 현대 예술의 이정표를 세우게 된다.

이 무식한 자들이 저 처참한 교양 수준을 가지고 감히 남의 수업계획에까지 간섭한다. 주제를 넘어도 과도하게 넘었다. 심지어 이 문제를 가지고 중앙대에 항의도 하겠단다. “중앙대학교 총장실에 독일문화 수업에서 백남준을 가르치고 있는 게 중앙대의 수업 전통이냐며 공식 문의도 해볼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조문 정국에 망언을 했다가 <와이텐뉴스>로부터 ‘듣보잡’이라 불렸던 변 아무개씨의 말이다.

한예종을 공격하는 것도 그 수준이나 방식이 똑같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문화판 뉴라이트는 ‘도대체 예술에 왜 이론이 필요하냐?’고 묻는다. 무식도 이 지경에 이르면, 아예 견적이 안 나온다. 예술이 이론과 결합된 것이 무려 500년 전 르네상스 시절의 일. 이들은 21세기 대한민국 예술가들을 중세로 데려간다. 예술사 500년을 생략하는 이 가공할 시대착오를 보라.

특히 현대 예술에서 이론이 결정적 구실을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가령 20세기 예술사에 획을 그은 마르셀 뒤샹의 ‘샘’을 생각해보자. 시장에서 사온 변기에 사인만 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실기가 필요할까? 뒤샹이 창조한 것은 물리적 객체로서 작품이 아니라, 예술의 새로운 정의였다. 머릿속의 관념이 곧 예술이라 믿었던 개념 예술가들은 작품을 전시회에 출품하는 대신 잡지에 기고했다.

U-AT 사업 중단시킨 문화부의 ‘무식’

잭슨 폴록처럼 캔버스에 물감을 흘리는 데 얼마나 많은 실기가 필요하고, 버넷 뉴먼처럼 한 색으로 캔버스 전체를 롤러로 밀어버리는 데에는 또 얼마나 많은 기량이 필요할까? 미니멀 아티스트처럼 작품을 제작해달라고 철공소에 전화를 돌리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실기가 필요하고, 앤디 워홀처럼 부하 직원들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시키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기량이 필요할까?

더구나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과 더불어 ‘뉴미디어 아트’ 혹은 ‘디지털 예술실천’이라는 것이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가령 인공생명을 위한 인터랙티브 설치를 만들려면, 최소한 센서를 만지거나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게다가 작품의 콘셉트를 세우려면, 프랙털 이론, 카오스 이론, 복잡계 이론 등 최신 과학 성과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유인촌 장관을 ‘예술의 유령’으로 표현한 한수자 작가의 일러스트 작품.
그럼에도 이들이 이론을 공격하는 데에는 심오한(?) 이유가 있다. 자기들이 ‘좌파’라 지목한 몇몇 교수가 공교롭게도 이론과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론과를 없애 좌파를 축출하겠다는 것이다(한예종에는 6개 원(院)마다 이론과가 있고, 거기에 소속된 교수들은 대부분 좌파가 아니다). 황당하게도 문화부의 감사 처분은 문화판 뉴라이트의 이 ‘초절정 울트라 무식’을 그대로 반영했다.

 U-AT 사업을 중단시킨 것은 문화부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른바 ‘디지털 컨버전스’의 시대에 매체 사이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있다. 우리는 컴퓨터로 텔레비전을 보고, 라디오를 듣고, 편지를 보내며, 책을 쓰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지 않는가? 이런 추세를 반영해 전통적 장르 간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있다. 과학과 기술과 예술을 가르던 높은 벽도 무너져내리고 있다.

예술이 새로운 기술의 개발에 영감을 주고, 기술이 예술에 새로운 표현수단을 주는 시대에 문화부는 통섭 사업을 중단하라고 명령한다. 기술과 예술, 기술과 과학을 통합한 새로운 유형의 예술가를 길러내야 할 시대에 학생들에게 실기만 가르치란다. 왜 그럴까? 거기에 무슨 예술철학적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기들이 좌파로 지목한 사람들이 주도하는 사업이라서 중단시킨 것이다. 

과연 ‘MB의 자식’들이다. 생각해보라. 1970년대에 우리나라는 기능올림픽 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쓸곤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시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 기술을 갖고 있었던가? 이렇게 기술과 기능은 전혀 다른 것이다. 하물며 예술과 기능은 어떻겠는가? MB가 디지털 시대의 정보화 세대에게 땡볕에 나가 ‘삽질’이나 하라고 말하는 것과,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예술가에게 기능에나 전념하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동일한 현상이다.

국제적으로 이름이 난 우리나라 예술가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 연주자와 같은 퍼포머들이다. 거기서 한국은 이미 국제적 수준에 이르렀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창작이다. 정작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다. 연주에도 이론이 필요하거늘, 창작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런데 문화부에서는 한예종 학생들에게 기능만 가르치란다. 한예종 학생들 키워 양촌리 김 회장 회갑 잔치 하려나보다.







한겨레

몸은 가둬도 생각은 가두지 못한다

김태권의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 몸은 가둬도 생각은 가두지 못한다

반지성주의는 역사가 깁니다. 진시황은 ‘과거를 빌려 와 현재를 비난하는 것을 금하기 위해’ 책을 불살랐습니다. 대부분 문맹이었던 십자군 기사들은,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이유로 비잔티움 시민들을 조롱했습니다. 파시즘의 강령이 뭐냐고 묻는 이에게, 무솔리니는 ‘그렇게 묻는 민주주의자의 뼈를 부러뜨리는 것’이라 대답했지요. 어떤 파시스트는 ‘주먹이야말로 우리 이론의 종합’이라고 했습니다. 문화대혁명 시절 홍위병들은 비판적 지식인을 린치했고요.

예나 지금이나 압제자들은 우리 머릿속에서 바른 생각을 지우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공한 적은 없습니다.

에라스뮈스는 현자 비아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비아스에게 누군가 물었다지요. “당신은 왜 불타는 당신의 고향 도시에서 아무 재산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습니까?” 비아스의 대답이 걸작이네요. “나는 내 모든 재산을 가지고 나왔소.”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쓴 철학자 전기를 찾아봤더니, 일설에 따르면 비아스가 도시 프리에네에서 가장 부유한 시민이었다는군요. 그렇다면 도시가 불탔을 때 비아스는 엄청난 재물을 잃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도 비아스로부터 가장 소중한 내면의 보물을 앗아갈 수는 없었습니다.(마그리트의 회화 <치료자>를 본떠, 내면의 보물을 챙겨 나온 현자를 그려 보았어요.)

에라스뮈스는 ‘우리의 모든 소유는 바로 우리의 내적인 영역에 있다’며, “현명한 자는 자신의 보물을 지니고 다닌다(사피엔스 수아 보나 세쿰 페르트, sapiens sua bona secum fert)”는 라틴어 격언을 소개합니다. 재물과 명예와 권세 따위는 있다가 없다가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못된 마음을 품은 채, 재물을 주겠다며 우리를 유혹할 수도 있고, 명예와 권세를 앗아가겠다며 우리를 협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장 중요한 보물, 즉 우리의 앎과 신념은,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은 지식인 그람시를 잡아넣으며 이랬다지요. “20년 간 이 자의 두뇌를 정지시키겠다.” 그람시는 7년 만에 숨을 거두었으니, 그들은 성공한 걸까요? 아니오, 그들은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람시는 감옥에서 <옥중수고>를 남겼고 이 책을 통해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그의 정신과 우리는 대화를 나눕니다. 좁은 감방에 몸을 가두더라도 바른 앎과 굳은 신념은 사슬로 묶을 수 없습니다. 책을 태우더라도 자유로운 정신은 꺾을 수 없습니다. 육신의 생명이 없어져도 올바른 생각은 살아남습니다.

그런데 나는 어쩌다가 21세기 한국에서 반지성주의를 생각하게 된 걸까요? 문화예술위원회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사태 때문에 그랬나 봅니다. 이게 웬 ‘변’인지 모르겠네요, ‘듣도 보도 못한’ 인사들이 ‘완장’ 차고 돌아다니는 모습이라니! 그러나 미술관과 학교를 문 닫더라도 예술의 상상력은 가두지 못합니다. 눈엣가시 같은 지식인을 자리에서 쫓아내더라도 그들의 정당한 앎과 신념은 꺾을 수 없을 겁니다. 저들이 승리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김태권 만화가·〈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지은이





한겨레

문화부 일방통행에 문예위 ‘자율’ 실종
산하 전시·공연장 통폐합 등 주요 현안
위원·노조 의견수렴 없이 밀어붙이기
문화계 “거수기 전락…유 장관 퇴진운동”


"법규집 보세요. 문예진흥법상 이런 안건은 보고 아닌 의결사항입니다. 위원장은 위법을 한 겁니다.”

»문예위

지난달 29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 76차 회의가 열린 서울 대학로 문예위 본관 회의실. 일부 위원들의 고성이 터져나왔다. 오광수 위원장이 산하 전시·공연장 통폐합 등 8개 주요 현안을 단순 보고사항으로 의결 없이 통과시키려다 위원들 항의에 보류하는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이들 안건은 위원회 본관과 산하 아르코미술관을 통합한 대학로 토탈아트센터 설립, 산하 예술극장과 아르코시티 극장 통폐합 독립재단화, 본관 사무공간 이전 등 조직의 장래가 걸린 현안들이었다. 위원들 사이에서 “이럴거면 위원회는 왜 만들었나” “우린 수당 받는 알바생”이란 한탄이 흘러나왔다.

소동 끝에 오 위원장은 지난 12일 다시 열린 77차 회의에 미술관은 두고, 본관만 예술창작 공간으로 바꾸는, 일부만 수정한 의결안을 냈다. 법안은 위원들의 침묵 속에 통과됐다. 반대를 표명한 유진용 을지대 교수(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 위원 2명은 불참했다. 앞서 회의장 입구에서 8개안 통과에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벌인 문예위 노조원들은 “이제 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부의 확실한 거수기가 됐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이런 해프닝들은 지난달 13일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문예위에 찾아와 8개 안건의 핵심 내용들을 추진하라고 전격 ‘시달’한 뒤 벌어진 일들이다. 문예위 사무처가 작성한 8개 안건들은 문화부 쪽과 가까운 몇몇 위원들 외엔 사전에 전체 위원들 사이에 논의된 적이 없다는 게 위원들의 전언이다. 사무처 쪽은 관련 현안을 논의할 4개의 실무 소위가 구성됐다고 밝혔지만, 모두 유 장관 발언이 나온 뒤인 5월말 위원들에게 서면 동의서를 받아 급조한 것들이다. 위원들 상당수가 모르는 개편안을 장관 발언에 맞춰 급조한 뒤 안건으로 올린 셈이다.

오 위원장은 “문화부 쪽과 위원들이 간담회 등에서 이심전심으로 교감하며 만든 안”이라며 “위원들은 물론 노조도 이런 사정을 이해했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일부 위원들과 노조는 전혀 다른 말을 한다. 장병태 노조 위원장은 “통과 안건들은 문화부 쪽이 사무처 간부들과 밀실 조율한 결과물에 불과하다”며 “위원, 노조와의 사전 협의 절차를 무시한 채 추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문화예술위원도 “위원회의 위상과 권익을 보호해야할 위원장이 앞장서 장관의 들러리를 자처하는 상황인데도, 위원들은 대부분 눈치만 보는 상황”이라며 “위원을 맡은게 후회스럽다”고 했다.

문예위가 문화부의 일개 집행기관으로 변질했다는 우려는 지난해부터 나왔다. 지난해 9월 나온 문예기금 지원 일부 기능의 지자체 이관, 소위 개편 등의 운영개선안도 문화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뒤 2기 위원들에게 보고 사항으로만 전달했다. 김정헌 전 위원장의 해임 사유였던 문예진흥기금 예치금 투자 손실도 오 위원장이 직권으로 예치금 환매를 강행해 일부러 투자 손해를 입는 해프닝을 벌였다. 오 위원장은 직무대행 때인 지난 2월초 동아일보 기자 출신의 사무처장을 노조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임명해 출근 저지 투쟁을 불렀다. 이런 사태의 이면에 어김없이 문화부의 강한 입김이 있었다는 게 문화계 중론이다.

이에 대해 ‘상상력에 자유를!’ 위한 미술인 모임은 13일 705명이 연대서명한 ‘문화예술의 자율성 회복을 위한 미술인 성명’을 냈다. 이들은 성명에서 최근 아르코 미술관의 인사미술공간 폐쇄, 아르코미술관 복합공간화 등 문예위 파행으로 문화예술의 자율성이 훼손되고 있다며 유 장관 사퇴를 요구했다.

한편 유 장관은 17일 서울 아르코미술관에서 문예위를 통과한 8개 안건을 뼈대로 내년도 문예위의 예술지원 정책 개선안을 발표할 예정이어서 문예위 자율성 침해를 둘러싼 갈등은 더욱 심화할 조짐이다.


노형석·임종업·정상영 기자 nuge@hani.co.kr





No.1 경제포털

박찬욱, 류승완 감독등 영화인 224명 시국선언문 발표




박찬욱, 정윤철 류승완 최동훈 김대승 감독 등 영화인 224명이 민주주의의 후퇴를 걱정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영화인들은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현재 민주주의의 후퇴가 심각합니다.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의 후퇴를 걱정하며 시국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영화인들도 현 시국의 심각함에 동의하며 아래와 같은 시국선언을 발표합니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어려운 만큼 희망을 말해야 하는 영화의 의무는 이미 순진합니다. 진실을 호도하고 소통을 차단하며 국민의 양심을 권력으로 잠재우려는 역사의 역류가 계속되는 한 어쩌면 이 땅의 모든 영화는 거짓일지 모릅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영화인들은 “영화는 삶을 이야기하지만 오늘 우리는 좌우로 가르며 상처내고 증오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함께 쌓아온 소중한 민주주의가 헌신짝 버려지듯 내팽개쳐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방조와 무관심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책임을 나누며 반성의 기회를 주려 합니다. 더불어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겸허하고 진정한 사과를 요구합니다. 표현,집회결사,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반민주주의적인 행위들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합니다”라고 호소했다.

다음은 시국 선언문 전문이다.

“거꾸로 흐른 시간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영화는 그 증거입니다”

어려운 만큼 희망을 말해야하는 영화의 의무는 이미 순진합니다.

누군가 죽었고 죽어가고 죽어 나가는 것이 무관심한 이 세상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뻔뻔함이 버겁습니다.

진실을 호도하고 소통을 차단하며 국민의 양심을 권력으로 잠재우려는 역사의 역류가 계속되는 한,

어쩌면 이 땅의 모든 영화는 거짓일지 모릅니다.

영화는 삶을 이야기 합니다.

사람다운 사람. 사람답게 사는 세상. 모두가 동등하게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삶.

하지만 오늘 우리는 사람을 위 아래로 나누어 짓누르고 허덕이는 세상에 익숙해져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좌우로 가르며 상처내고 증오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절박한 생존마저 철저히 소외시키면서 위선과 기만으로 국민을 유린하는 시대입니다.

원칙과 소신은 공허한 이상일 뿐이고

우리 모두 함께 쌓아온 소중한 민주주의가 마치 헌신짝 버려지듯 내팽개쳐지고 있습니다.

더욱 견디기 힘든 것은

우리가 이런 현실에 무감해지길 바라는 권력의 의도이고

그것에 순응해 가는 우리의 삶입니다.

그런 삶 속에서의 영화는 무의미하고 무가치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다시 살아 보고자 합니다.

국민을 다스리겠다는 권력의 오만한 자세가 너무나 역겹지만,

우리도 방조와 무관심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책임을 나누며

이 땅의 주인으로서 당연한 권리로 반성의 기회를 주려 합니다.

부끄러워할 줄 알고 책임질 줄 아는

각성과 쇄신의 기회를 주려 합니다.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겸허하고 진정한 사과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반민주주의적인 행위들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결코 이 땅에서 거꾸로 흐른 시간들을 잊지 않을 것이고

온 몸과 온 가슴으로 온전히 기록하여 역사에 전할 것임을

당당히 천명합니다.

지금의 우리가 훗날 우리에게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게으르지 않았음을 말할 때

떳떳할 수 있기를 약속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영화는, 그 증거일 것 입니다.



2009. 6. 16.



영화인 일동

강봉래, 강소영, 강원숙, 강이관, 강철우, 공미연, 김주영, 김진열, 김지현, 김경묵, 장성연, 권정삼, 박광수, 김동현, 황철민, 공수창, 구성주, 권정인, 권종관, 김경만, 김경욱, 김경진, 김경형, 김국형, 김남정, 김대승, 김도학, 김명준, 김문성, 김미현, 김선아, 김성수, 김성우, 김성욱, 김성홍, 김성훈, 김승규, 김시무, 김신태, 김연호, 김영, 김영덕, 김영로, 김영심, 김영혜, 김유성, 김윤아, 김재수, 김정권, 김정영, 김조광수, 김종현, 김지영, 김진상, 김태용, 김태은, 김태형, 김태훈, 김현석, 김현수, 김현정, 김현정, 김현정, 김현주, 김홍록, 김화범, 나현, 남태우, 노재원, 류맹철, 류승완, 류장하, 류진옥 류형진, 모성진, 모지은, 민규동, 민병훈, 박경미, 박관수, 박대영, 박미령, 박범, 박부식, 박상백, 박성경, 박성호, 박성호, 박영훈, 박유희, 박은영, 박은형, 박지성, 박지연, 박지영, 박지예, 박찬욱, 박철희, 박흥식, 박흥식, 박희성, 방은진, 변성찬, 변영주, 변재란, 봉만대, 부지영, 서경미, 서미성, 서은정, 서제인, 설인재, 성수아, 손소영, 손정우, 송경식, 송미선, 송태종, 송해성, 신성은, 신은실, 신찬비, 신창길, 신창환, 신철, 심광진, 심산, 심현우, 안상훈, 안영진, 안정숙, 양유정, 양종곤, 양해훈, 염찬희, 오기민, 오기현, 오상민, 오영필, 오주연, 유창서, 윤덕현, 윤성호, 윤인호, 윤종빈, 윤주형, 윤혜숙, 이경희, 이근아, 이길성, 이동은, 이동훈, 이마리오, 이미경, 이미연, 이병원, 이봉규, 이상윤, 이성은, 이수연, 이안숙, 이애자, 이영, 이용연, 이원재, 이은경, 이은경, 이정범, 이정욱, 이지선, 이지연, 이진영, 이철하, 이태윤, 이필훈, 이현명, 이혜경, 이혜란, 이혜진, 임순례, 임우정, 임찬상, 임창재, 임필성, 장준환, 장희선, 전수일, 정병각, 정서경, 정연주, 정윤철, 정재은, 정주현, 정지영, 조근식, 조민호, 조민희, 조석순애, 조영각, 조인숙, 조종국, 조창호, 주유신, 주진숙, 최광희, 최동훈, 최설, 최영진, 최용기, 최은화, 최정운, 최정인, 최주연, 최지원, 최현용, 최홍석, 추창민, 하기호, 한상범, 한지승, 허경, 허인무, 홍성은, 황동미 (가나다순/224명)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조은영 기자 helloey@mk.co.kr]